어른이 되어 다시 어린왕자 Le Petit Prince 를 읽어보았습니다. 40대가 되어서야 약간이나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고 느낌 점에 대해 간단히, 거창하게 말하여 독후감을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어른을 위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난해한 상징에 대한 어린이의 시선
'어린왕자' 하면 생각나는 것은 작가의 독특한 '생텍쥐페리' 라는 이름과 '모자' 그림, 아니, '보아뱀 ' 그림입니다. 약 30년 전 본인은 어린이의 시선에서, 모자 그림을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거야'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왕자와 책 속의 화자는 그것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단박에 알아차리며 무서워서 그림을 치우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것은 마치 '너는 창의력이 없는 어린이로구나'라는 얘기를 듣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어린시절 이 '어린왕자'라는 책을 매우 싫어했고, 그저 잘난 척하는 책이라고만 생각하여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사실은 꾹 참고 읽기는 읽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방학숙제를 하기 위한 필독서였으니까요. (90년대 국딩이들 방학 최대의 위기는 개학 전날 독후감을 쓰는 것이였지요, 그렇지 않다면 돌아오는 것은 선생님의 매 타작,,)
하지만 40대에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알았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을요. 그리고 왜 이 처럼 난해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작가 생텍쥐페리의 삶을 통해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책을 읽고 난 후의 제 생각과 추측입니다. 비평에 정답은 없으니, 저의 생각은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사실 작가 자신의 이야기 : 결혼에 대하여
작가인 생텍쥐페리는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비행기 조종사'이자 '어린왕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연보를 보니 실제 글쓴이는 상업용 비행기를 조종하기도 하고, 군인으로서 프랑스 전투기를 몰기도 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사막에 불시착을 실제로 하기도 했습니다. 사막 불시착을 포함하여 총 4번의 추락사고를 겪습니다.
소설 초반에 어린왕자의 별인, 소행성 B612에 하나 뿐인 장미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왕자는 장미를 소중히 대하지만, 왠지 모르게 장미는 항상 화가 나 있습니다. 순수한 어린왕자는 왜 장미가 항상 화를 내는지, 가시는 왜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결혼생활의 부인과의 갈등에 대해 토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의 장미는 자기가 온 별이랑 어린왕자의 별은 다르다며 불평을 하는데, 실제로 프랑스인인 작가는 아르헨티나의 여인 '꼰수엘르 순신'과 결혼을 합니다. 소설 속의 장미의 모델이 바로 작가의 부인인 '꼰수엘르'인 것입니다.
장미는 남편의 불륜으로 그렇게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의 불륜은 '나쁜 씨앗'인 '바오밥 나무'로 표현되었습니다. 장미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만 늦게 손을 쓰면 별 전체를 뒤덮고 땅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뿌리내려버리는 무서운 나무.
어린왕자는 장미를 항상 보호해주고 아껴주려고 하지만, 어린왕자 자신도 장미의 사소한 말에 상처를 받고, 결국 별을 떠나게 됩니다. 남녀 간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사랑해서 만나지만, 때때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며 싸우기도 합니다. 하물며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 쉽게 헤어질 수도 없이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립니다. 장미와의 불화로 자기가 살던 별을 떠나는 일로 작가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여우와의 대담을 통해서 장미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장미를 두고 떠난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결혼생활이 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어려분... (니들은,,)
사실 작가 자신의 이야기 : 못난이 어른들
어린왕자는 주변 소행성 여행을 통해 여러 군상들을 만납니다. 조그만 별에서 항상 복종을 원하는 왕, 자기를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어른, 뭔가를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사업가, 술주정뱅이,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지리학자까지. 모두들 못난 현재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순수한 어린왕자는 못난이 어른들과 비교대상이 되지만, 실제로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지금의 어른들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인데, 자기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무언가를 자꾸 소유하려고 하는 것. 권위가 없는데도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규범을 만들며 남을 억누르는 것. 본질보다 남의 눈치를 보며 상대방이 나를 우러러 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 술을 마시는게 나쁜 것인지 알지만 계속 술만 마시는 술주정뱅이. 작가 본인조차도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어른들이 가지는 이런 생각이나 가치들이 나쁜 것임을 알지만, 이것에서부터 쉬이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어린왕자라는 순수한 존재를 통해서 본인을 포함한 어른들에게 일갈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렇게 자세히 비난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길들여 진다는 것 : 삶의 행복에 대하여
사막에서 만난 여우와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한 심도깊은 대화를 합니다. 길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이라도 '길들여진다면' 혹은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소중해 질 것이다, 길들여 진다는 것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이라는 말로 '관계'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정의합니다.
그런 관계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에 대해서도 여우는 설명합니다. 여우는 밀을 먹을 수 없어서 들판에서 밀밭을 보아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지만, 어린왕자에게 길들여 진다면, 흔들리는 밀을 보며 어린왕자의 금빛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행복감에 젖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런 길들여진다는 행위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바꿔서 쓴다면, 사랑을 통해서 평소에는 아무 의미가 없던 것들이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음을 여우는 알려줍니다.
다만, 그것이 매번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이 때문에 행복의 가치가 사라질 수 있음도 경고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일을 하다가 주말에 쉬는 것은 매우 신나는 일이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 놀게 된다면 일을 하면서 주말에 잠깐 쉬는 것의 정도로 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는 이것을 '의식을 지켜야 한다'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의식'을 지킨다는 말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왕자의 귀환
어린왕자는 소행성과 지구여행을 마치고 자기 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만 지금 상태로는 너무 무거워서 돌아갈 수 없다고. 껍데기는 아무 것도 아닐 뿐, 자기를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조종사에게 자리를 피해달라고 얘기합니다. 노란 빛이 나면서 어린왕자는 떠나고, 어린왕자의 형체는 사막에 떨어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작가 연보를 보면서 알게된 것이지만, 작가의 남동생 '프랑수와'가 어린 나이로 죽게 되는데, 이것이 '어린왕자'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고 세상에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나이가 된 작가는,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채로 세상을 떠난 '어린왕자' 프랑수와를 그리워하며 인간의 순수함과 본질,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작가는 2차 대전에 공군 조종사로서 전쟁에 참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인간적 순수성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어린나이로 요절한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의 참상 속에 자신은 속물처럼 살아가고, 불시착했지만 다시 귀환하기 위해 비행기를 고치면서 삶에 대한 집착과 희망, 절망 등을 느끼며 사막에 있었던 작가의 상황이 그려집니다.
어려서는 난해하기만 하고 잘난 척하는 소설이라고 치부하고 책을 덮어버렸지만, 작가와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린 지금은 문장 하나 하나가 눈물이 나는 글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 책은 어린이 동화가 아닌 현생을 살아가다 지쳐버린 40대 중년 차부장님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다시 한 번 소설 '어린왕자'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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