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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뷰

서울 경교장 방문 후기

by 찐으로 기록하는 블로그 2024. 8. 22.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며칠 전 방문했던 서울 경교장에 대해서 리뷰해볼까 합니다.

서울 경교장 마지막 임시정부
서울 경교장 전경

경교장의 유래

경교장 (京橋莊) 은 일제시대 금광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친일파 '최창학'이 별장으로 지은 집입니다. 처음 완공되었을 때는 죽첨장 (竹添莊) 이라고 하였는데, 해방 정국에 친일파 최창학은 김구선생에게 건물을 헌납하였고, 김구 선생께서 이름을 경교장으로 개명하신 것입니다.

죽첨장 (竹添莊) 이란 이름은, 일제시대 당시 충정로 일대가 죽첨정 (竹添町) 이라는 동네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여기에서 '죽첨'은 조선 개화기 갑신정변 전후로 조선 공사로 파견된 '타케조에 신이치로' (竹添 進一郞)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가 당시 충정로 일대에 살았기 때문에,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기리기 위해 동네 이름을 '죽첨정'으로 한 것입니다. 광복 이후, 을사조약의 부당함에 항거하며 자결한 민영환의 시호를 따 '충정로'로 동네 이름이 다시 바뀌었으니 이 또한 상반되는 부분입니다.

김구선생께서 조국 침략의 신호탄을 쏜 인물의 이름을 딴 건물을 헌납받으셨으니, 개명을 안하실 수 없으셨겠죠? 참고로 경교장의 '경교'는 서대문 인근의 다리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어디인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추가로, '~장' 이라고 하면 야구장이나 축구장 처럼 넓은 광장이나, 혹은 여관을 떠올리기 쉽상이지만, 장(莊)이라 것은 고관대작이나 유명인사의 저택이나 별장을 가르키는 말 입니다. 우리가 쉽게 쓰는 산장(山莊)이라는 말도, 실은 산중별장의 준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에서의 '장'은 여관이나 설렁탕 집 이름으로 더 익숙한 느낌입니다. (여관이나 설렁탕 집이 당시엔 으리으리한 건물이었을지도,,)

경교장은 해방 이후 김구선생의 사저 및 임시정부요원들의 집무실로 사용되어, 마지막 임시정부 건물이라고 얘기합니다. 김구 선생의 시해 이후, 다시 최창학이 김구 선생 유족으로부터 건물을 환수하였고, 중화민국(대만) 대사관저, 베트남 대사관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에 인수되어 병원 건물로 개조되어 사용되다, 이후 민족정기 회복 등의 여론에 힘입어, 다시 김구 선생의 사용 시절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래는 강북 삼성병원에서 경교장을 부수고 병원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고,,

경교장 견학

견학은 지하, 1층, 그리고 문제의 2층의 순서로 견학을 합니다. 지하층은 예전엔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임시정부와 김구선생의 관련 전시품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구 선생의 혈흔이 묻은 저고리와 그의 회중시계에 눈이 갑니다. 그의 회중시계는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 의거 (일명 도시락 폭탄)를 가기 전, 김구 선생의 시계가 낡았다고 하여 바꾼 것이라고 하지요. 윤봉길 의사께서는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 짜리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 밖에 쓸 데가 없으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서로 시계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영화 '밀정'의 장태산이 이정출에게 시계 주는 장면에서 위의 내용이 오마주 되었습니다. 선생의 혈흔이 묻은 저고리와 회중시계 진품은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 기념관에 있고, 경교장의 전시품은 복제품이라고 합니다.

영화 밀정에서의 김구 윤봉길 회중시계 오마주
영화 '밀정'에서의 장태산과 이정출의 시계 scene


1층은 임시정부의 회의실, 응접실 등으로 사용되었고, 화려하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2층은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어 있고, 올라가면 일본식 다다미로 꾸며진 방들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복도를 지나면, 김구 선생께서 미국방첩대 소속이자 육군 포병소위 안두희에게 피격당하신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피습 당시 서예를 하고 계셨던 책상이 보이고, 그 뒤로 선생의 얼굴과 몸을 관통한 총알자국 2개소가 선명히 보입니다. 선생께서 참변을 당한 곳이라고 생각하니 침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구 선생 시해 장소 서울 경교장
김구 선생 시해장소 : 뒤에 총탄 자국 2곳이 선명하게 보인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는 김구선생 암살로 인하여 종신형을 선고받지만, 이후 감형과 한국전쟁 시의 형 집행 정지로, 최종적으로 징역 1년만 살고 출소하고, 이후 군납업체를 운영하며 호의호식을 하며 살게됩니다. 다만 노인이 다 된 말년 79세에 택시기사를 하시던 의인 박기서의 정의봉에 맞아 죽게되어 오욕의 세월을 마무리합니다.

마치며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테러리스트로 치부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2024년 현재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민족정기 함양을 위해 더 많은 분들께서 경교장에 방문하시고, 독립을 위해 힘쓰셨던 순국선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그들을 기리는 기회가 되셨으면 합니다.

끗.